慰問状がくれた縁

2010年3月7日

「慰問状がくれた縁」
ある日、私が教えた学生二人が海兵隊に入隊すると尋ねて来た。これから多くの苦労をする彼たちに美味しい料理をご馳走し、我が家に★縛られた★海兵隊の話を聞かせた。
我が家には海兵が三人いた。父<18期>は1952年朝鮮戦争に参戦してから足に砲弾を受け障害軍人となった。次に一番上の兄<361期>が1978年に入隊した。今に比べれば大変だったが素敵な生活だったらしい。そして、その兄の一人息子である甥<1014期>が去年★に全域した★。 ところでこんな来歴よりもっと ものすごい縁がある。兄が社会生活をしていたところに不慣れな手紙が飛んで入って来た。内容はというと、手紙を書いた本人は馬山に住んでおり、ベトナム戦に参戦した軍人というのだ。封筒には★黄金色に見送った便秀★が入っていたが兄が中学一年生の時書いて送った慰問状だった。その人は戦闘中にその手紙を読みながら、生き甲斐と希望を得た。それを忘れずに田舍の家の住所で手紙を送ったのだ。
 驚くべきことは兄とその人が同姓同本であるうえに「一番海兵は永遠な海兵」という事実だ。その後、二人は兄弟のように接しながら、ある年は済州島で家族同士の夏休みを送った。
 満ち潮と引潮のように会って別れるのが私たちの人生だが、今は仕事のように毎日が大事で美しい縁の連続だと考えている。

【韓国語原文】「위문편지가 선물한 인연」
어느 날 내가 가르친 학생 둘이 해병대에 입대한다며 찾아왔다. 앞으로 고생 많이 할 학생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사 주며 우리  집에 얽힌 해병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우리 집안에는 해병이 세 명 있다. 아버지<18기>는 1952년 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다리에 포탄을 맞아 상이군인이 되셨다. 다음으로 큰형<361기>이 1978년에 입대했다. 지금에 비하면 힘들었지만 멋진 생활이었다고 한다. 그리고 큰형의 외아들인 조카<1014기>가 작년에 전역했다.   그런데 이런 내력보다 더 기막힌 인연이 있다. 큰형이 직장생활을 하던 참에 낯선 편지가 날아들어왔다. 내용인즉,편지를 쓴 자신은 마산에 사는 사람으로 월남전에 참전한 군인이라는 것이다. 편지 봉투에는 누렇게 바랜 편지지가 들어있었는데 큰형이 중학교 1학년 때 써 보낸 위문편지였다. 그분은 전투 중에 그 편지를 읽으면서 살아야 할 이유와 희망을 얻었단다.그래서 잊지 않고 시골집 주소로 편지를 보내온 것이다.
 놀라운것은 큰형과 그분이 동성동본인 데다 “한 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사실이다. 그 뒤 두 분은 형님,동생하면서 한 해는 제주에서 가족끼리 여름휴가를 보낸다.
 밀물과 썰물처럼 만나고 헤어지는 게 우리 삶이지만,이번 일처럼 하루하루가 소중하고 아름다운 인연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든다.

親心

2010年3月7日

「おい、酒持ってこい!」 私の働く小さな店にある男の叫びが大きく力強く響いた。ホームレスに見える男は酒に酔ってよろけ、泥まみれのジャンパーはカビ臭いニオイがした。避けようとしたところにマネージャーが男に近付いた。
 「おじさん、ここではそんなものは売ってないです。お帰りください。」 「なら、水を持ってこい!」 「何の水ですか。お帰りください。」 「水一杯も貰えないか? 今、俺を無視するのか?」 男が怒って手を上げた瞬間、マネージャーが一言言った。「ここへは幼い学生も多いんです。みんな我が子みたいなのに、どうしろと言うんですか。」 瞬間、私は驚きました。男が静かになり、目つきが変わった。
「本当か・・・幼い?」 そうして頭を掻きながら言った。「タバコ1本だけくれ。そしたら行くよ。」 男はマネージャーが渡したタバコを手に握って私を含めた職員たちにぎこちない顔をほころばしながら言った。「おじさんは悪い人じゃないんだ。小学校しか出る事ができなくてね。」 そう言って、一目散に出て行った。
 その日、私は親心を少し分かる気がした。いくら悪そうな人でも学の低い人でも我が子の前では恥ずかしくない親でいたいと。やはり親は偉大だなと思った。今になって世の中すべてのご両親に尊敬の意を感じた。

 【韓国語原文】 “야, 여기 술 가져와!” 내가 일 하는 작은 가게에 웬 사내의 고함이 우렁차게 퍼졌다. 노숙자로 보이는 그는 술에 취해 비틀거렸고, 먼지투성이 점퍼에서는 퀴퀴한 냄새가 났다. 피하고 싶던 차에 매니저가 그에게 다가갔다.
 ”아저씨, 여기 그런거 안 팔아요. 그냥 가세요.” “그럼 물 가져와!” “무슨 물이예요. 그냥 가세요.” “물 한잔 얻어먹지도 못해? 지금 나 무시하는 거야?” 그의 손이 한 대 칠 것처럼 올라갔을때 매니저가 한마디 했다. “여기 어린 학생도 많아요. 다 자식 같은 사람들인데 왜 그러세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그가 조용해지더니, 눈빛이 흔들렸다.
“정말…어려?” 그러고는 머리를 긁적이면서 말했다. “담배 하나만 줘.그럼 갈께.” 그는 매니저가 건넨 담배를 손에 쥐고 나를 비롯한 직원들에게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저씨 나쁜 사람 아니야. 초등학교밖에 못나와서 그래.” 그러고는 쏜살같이 사라졌다.
 그날 나는 부모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았다. 아무리 불한당 같은 사람이라도, 못 배운 사람이라도 자식 앞에서는 부끄럽지 않은 부모이고 싶구나. 그래서 부모를 위대하다고 하나 보다. 새삼 세상의 모든 부모님에게 존경심을 느꼈다.

おばあちゃんと チュチュバー

2010年3月7日

할머니와 쭈쭈바
가까운 사람들에게”쥐뿔도 없으면서 오지랖만 넓다.”거나 “정만 많다.”라는 핀잔을 가끔 듣습니다. 못난 얼굴처럼, 나누기 좋아하는 성격도 어쩌면 타고난 것이 아닐까요? 그렇다고 대단한 것을 나누는 건 아닙니다. 소소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이죠.
 처음에는 그랬습니다. 시골 할머니들에게 가벼운 지팡이나, 홀로 맞는 긴긴 겨울밤에 드실 초코파이 하나를 건네는 손도 부끄러웠습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대가 없이 건네 본 경험이 없던 거지요. 그런데 삶이 한 겹씩 덧대어지자, 건네는 손은 물론이고 받는 손도 자연스러워졌습니다.
토담 아래 쪼그리고 앉아 집배원 오토바이를 기다렸다 건네는 애호박 하나, 어미 닭의 온기가 남은 달걀 하나, 흙의 물기도 채 마르지 않은 무 하나지만 나를 기다린 할머니들의 마음이 담겨 있기에 차마 뿌리치지 못했습니다. 또 그것이 받았으면 갚아야 한다는 마음의 짐을 덜어 드리는 방법이라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뙤약볕에서 고추 따는 할머니들의 땀방울이 마음 아프던 작년 여름 봄날 이야기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삼 넣고 푹 곤 닭 한 마리씩 대접하고 싶은데, 형편이 못 돼 쭈쭈바를 잔뜩 사서 고추 밭을 찾아다녔습니다. 할머니들은 “뭘라고 이런걸….”하면서도 쭈쭈바를 받고 환하게 웃으며 땀을 훔쳐 내셧지요.
 그런데 한 할머니가 쭈쭈바를 들고 당황해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흙의 고운 입자가 지문의 골마다 들어찬 손가락뿐 아니라 얼굴에도 난감한 빛이 역력했습니다. 등기우편물을 전달하고 서명을 요구했을 때, 차마 이름 석 자 쓸 줄 모른다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과 다르지 않았지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습니다. 평생 자식들 바라지하며 살았지만, 정작 당신은 50원 하던 쭈쭈바 한 번 입에 넣은 일이 없다는 것을. 따 드린 쭈쭈바를 입에 넣고야 펴지던 할머니의 얼굴은 다섯 살 내 아들과 똑같았습니다.
 아직도 주위에 내 손이 닿지 않은 곳이 많다는 것을 깨닫습니다.그래서 긴 겨울의 끝자락으로 향하는 오늘도 나보다 더 추운 사람들에게 달려갑니다.아마 이 글의 원고료가 들어오는 날도, 까만 비닐봉지가 내 손에 들린 채 시골 할머니들을 향해 기쁘게 끌려 다니겠지요.
                                           <좋은생각  2월1일  -함성주 님-/집배원>

「お婆さんとチュチュバー」
周りにいる人たちに「何にも持ってないくせに でしゃばっている。」とか「情だけ多い」とたまに責められます。★不細工な顔のように、分けるのが好きな性格ももしかしたら生れついた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それでもすごいことを分けるのではないです.こまごましいこれをところないのです.
 初めにはそうでした.田舍お婆さんたちに軽い杖や,一人きり当たる長長しい冬夜に持つチョコパイ一つを渡す手も恥ずかしかったです.
誰かに何かを台がなしに渡して見た経験がなかったんです.ところで生が一重ずつ重ねて当てられると,渡す手は勿論で受ける手も自然になりました.
土壁の下うずくまって座って集配人バイクを待った渡す未熟のかぼちゃ一つ,母ニワトリの温もりが残ったたまご一つ,土のかんだりまだ乾かない大根一つだが私を待ったお婆さんたちの心が込められているのにどうしても振りはなすことができなかったです.またそれが受けたら返さなければならないという心の荷物を減らして上げる方法というのも悟りました.
 炎天の日差しで唐辛子取るお婆さんたちの汗しずくが心痛かった去年夏春の日話です.希望には三入れてじっくり煮こんだニワトリ一匹ずつもてなしたいのに,都合がなる事ができないhチュチュバーをいっぱい買って唐辛子畑を捜し回りました.お婆さんたちは “何をとこんな事を….”しながらもチュチュバーを受けて明るく笑いながら汗を盗んでネショッジです.
 ところで一お婆さんがチュチュバーを持って荒てるのではないですか?土のきれいな粒子が指紋のゴールごとに立ちこんだ指だけではなく顔にも困り果てる光がありありと見えました.登記郵便物を伝達して署名を要求した時,どうしても名前三字使うことができないと言えない人と違わなかったでしょう.
 言わなくても分かりました.一生子たちバラ誌しながら暮したが,いざあなたは 50願ったチュチュバー一番(回)口に入れた事がないというのを.取って上げたチュチュバーを口に入れたあとひろがったお婆さんの顔は五歳私の息子とまったく同じでした.
 まだ周りに私の手が触れない所が多いということを悟ります.それで長い冬のはしっこで向ける今日も私よりもっと寒い人々に駆け付けます.多分この文の原稿料が入って来る日も,真黒いビニール袋が私の手に聞こえたまま田舍お婆さんたちを向けて嬉しく引っぱれますね.
                                           良い考え 2月1日 -喊声株様-/集配人

私たちは夫婦

2010年3月7日

「우리는 부부」
달력속  같은날짜에 같은추억을 쓰는사람
따뜻한 아랫목에 앉으면 같은 고민을 하는사람
길가에 작은 꽃을보며 같이 미소짓는 사람
하늘에 둥근달이 뜨면 같은 소원을비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참 고마운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을 바라보고 사는 나는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글:김미선 님>

【日本語訳】

「私たちは夫婦」
カレンダーの同じ日付に同じ想い出を書く人
暖かい囲炉裏の前に座れば同じ悩みを話す人
道端の小さな花を見て一緒に微笑む人
空に まん丸お月さんが上がれば同じ願いを祈る人
そんな人がいます。
本当にありがたい人です・・・
そして、そんな人を眺めて暮らせる私は
本当に幸せな人です・・・

 「文:キム・ミソン様」

<ちょううんせんがく 2009年2月号より>

아랫목:オンドル部屋で、炊き口に近いところ。

愉快な自己紹介

2010年3月7日
「愉快な自己紹介」
初めての席で自分を気の利いた言葉で紹介する人は好感を独り占めするものだ。いつだったか聞いた ある銀行の副支店長の自己紹介が長いこと記憶に残っている。
「私は田舎の出身です。7人兄弟が和気あいあいと暮らしていましたが、本当に貧しかったんです。こんな話があります。貧しい家の子がどこかに行ってご飯を食べて帰って来れば 「量は多かった?」 と聞き、中流階級の家の子は「おいしかった?」、お金持ちの子は「雰囲気は良かったの?」と 聞いてみるそうです。ところで私が何か食べて帰ると家族たちが舌なめずりをしながら聞きました。「何か持って帰ってきたの?」 私は金儲けしたくてお金の商売をしています。  00銀行に勤める 000です」
瞬時に笑いが広がり雰囲気が和んだ。
魅力ある人は自分の職業と係わって面白い自己紹介のコメントを持っている。
「私は女がいなければ一日も暮すことができません。産婦人科の医師です。」
暮している地域を紹介する時もユーモアを忘れなければ第一印象で高い点数を得ます。
「チョンダンの隣町にあるブンダンに住んでいます。」「私はソウルで一番安い町であるサムチョンドンに住みます。いくら安ければ3銭ですか? すると友人が「お前は高い町内に住んでるな。俺は一銭も稼げないノウォン区に住んでる。」と、面責する。」
年齢を話す時も次のようにやってみてください。
「私は22歳です。よく「40代くらいですか!?」と言われます。そのとき私は言います。「本当に22歳です!残りの20歳は重くて家に置いてきたんですよ!」
【韓国語原文】 「유쾌한 자기소개」
서먹한 자리에서 자신을 재치 있게 소개하는 사람은 호감을 독차지하게 마련이다. 언젠가 들은 한 은행 부지점장의 자기소개가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있다.
 ”저는 시골 출신입니다. 칠 남매가 오순도순 살았지만 참 가난했습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가난한 집 아이가 어디 가서 밥을 먹고 들어오면 “양은 많았어?” 라고 묻고, 중산층 집 아이는 “맛있었어?”,  부잣집 아이는 “분위기 좋았어?” 라고 물어본다고 합니다. 그런데 제가 뭐라도 먹고 집에 들어가면 식구들이 입맛을 다시며 물었습니다. “뭐 좀 싸 왔니?” 저는 돈 벌고 싶어 돈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00은행에 근무하는 000입니다.
 순간 웃음이 번지면서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졌다.
 끌리는 사람은 자신의 직업과 관련해 재미있는 소개 멘트를 갖고 있다.
 ”저는 여자가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습니다. 산부인과 의사입니다.”
 살고 있는 지역을 소개할 때도 유머를 잊지 않으면 첫인상에서 높은 점수를 얻는다.
 ”천당 옆 동네인 분당에 살고 있습니다.” ”저는 서울에서 가장 싼 동네인 삼전동에 삽니다.얼마나 싸면 삼 전이겠습니까? 그랬더니 친구가 “너는 비싼 동네에 사는 거야. 나는 한 푼도 안 드는 노원구에 살아.”라고 핀잔을 주더군요.”
 나이를 소개할 때도 다음과 같이 해 보라.
 ”저는 스물두 살입니다. 사람들은 말하죠. “마흔은 넘어 보이는데요!” 그러면 저는 말합니다.
‘스물둘 맞습니다! 나머지 스무 살은 무거워서 집에 두고 온 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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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먹하다 (顔なじみでなくて)気まずい; ぎこちない。
부지점장 副支店長  
오순도순 仲良く暮らしたり語り合うさま; 和気あいあいと。